예술과 CSR사이, 아메리카노에 대한 생각

 

아메리카노

여자 친구와 싸우고서 바람필 때 다른 여자와 입맞추고 담배필 때 마라톤하고 간지나게 목축일 때 아메 아메 아메 아메 ~~~

팬의 입장에서 

나는 십센치 팬이다. 사실 팬이라기 보다는 그네들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들의 예술을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좋아한다. 아메리카노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아… 이런 노래도 있구나하고 생각했고, 그게 아니고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 허 참, 뭔가 있는 그룹이네 하고 생각했다. 페이스북에서 지인과 이들의 노래가 좋다고 이야기도 했다. 요즘 나온 십센치라는 그룹. 정말 괜찮지 않나요? 이런 이야기를 아는 분들과 많이 나눴다. 나는 이들의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가 조금 문제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특히 아메리카노의 경우, ‘아… 요즘에는 이런 가사들도 방송될 수 있구나. 한국 많이 개방됐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음악을 예술로 봤을 때, 특히나, 창작을 하는 십센치의 자유로운 영혼을 보았을 때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요즘 나오는 드라마들 보면 불륜이 허다하고 이상한 관계 설정에, 제대로 된 가정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하의 실종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꿀벅지라는 말이 통용되는 그런 시대가 아닌가? 이 정도 가사 정도는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나는 십센치의 음악을 좋아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전 여섯살 된 아들놈이 Bruno Mars라는 가수의 I don’t feel like doing anything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제목 – Lazy Song)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어디서 들었냐고 했더니 학교 스쿨버스에서 들었단다. 여섯살짜리 꼬마가 나는 오늘 아무것도 안할래요… 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것이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스쿨버스에서도 틀었다고 하니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Kidz Bob이라는 팝송을 어린이 버젼으로 부른 노래들을 수록하는 앨범에도 이 노래가 있다고 해서 괜찮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노래를 페이스북에 올려보려고 뮤직비디오를 찾는 과정에서 이상한 장면들을 뮤직비디오에서 보게 되었고 성적인 가사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아메리카노의 가사를 보면 여섯살짜리 아들놈이 부르고 다니게 놔둘만큼 좋은 가사는 아니다. 물론 그 가사를 듣는다고 해서 내 아들이 여자 친구와 싸우고서 바람을 필 것도 아니며, 다른 여자와 입맞추고 담배를 피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이 그런 노래를 부르고 다니게 하고 싶을까? 물론 청소년 유해판정이 난다고 해서 그들이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부모들이 막는다고 듣지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얘야. 그런 노래를 왜 부르고 다니느냐.” 라는 말 정도는, 부모라면,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이런 노래가 좋은 노래다라고 권장하는 일까지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자의 입장에서

사실 이 문제는 대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나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는 분들에게 있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마도 좋은 토론 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런데, 만약에 그 토론에서 나 역시도 내 입장을 표현해야 한다면, 나는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할 것인가? 요즘같은 다매체 시대에 청소년들을 유해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경각심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부작용들이 있을 수도 있다. 모 방송에서 봤더니 청소년들은 아메리카노가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받은 후에야 그 가사가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이런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정말 순수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에는 만든 음악을 대중들에게 팔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음악가들도 한번쯤은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차피 전국민의 세금으로 내서 운영되는 공중파에 나와서 노래 부르고 싶고 언더그라운드에서만 노래 부를 것이 아니라면, 이왕이면, 쿨한 오빠도 좋지만 좋은 오빠가 되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게 싫다면, 청소년 유해판정 받았다고 투덜거릴 것도 없는 일 아닐까?

커뮤니케이션 학자의 입장에서 

Doff Zillmann이라는 학자와 Jennings Bryant가 정립한 엔터테인먼트 이론 중 Excitation Transfer (흥분 전이?) 이론을 보면, 스포츠 경기를 보고 흥분된 마음에서 남아 있는 감정들이 폭력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주 유명한 Albert Bandura라는 학자의 보보인형 실험에서 보면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폭력적인 행동을 따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과격한 폭력적인 행동을 창출해내기까지 한다. 매체의 영향은 분명히 있다. 이는 노랫말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대중매체 모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선정적인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좋아해주는 어른들. 이런 것들이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의 인식에 주는 영향에는 무엇이 있을까?

 

Bandura 박사의 보보인형 실험

김여진씨가 여성가족부에 해 주었던 걸어다니는 술 취한 어른들에게 모두 19금 딱지를 부칠 것인가라는 쓴 소리. 교육방송 빼고는 모두 19금을 시켜야 하는가라고 이야기 했던 이외수씨 등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여성가족부에 대한 쓴소리일 수도 있지만, 이 사회에 대한 경고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 의중은 모르겠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술취한 어른들. 버젓이 소맥 마시는 이야기를 하고 회식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공중파의 예능 프로들. 이 모든 것들이 진짜 19금 되어야 할 것들 아닌가?

얼마전 다녀왔던 Association of Education for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AEJMC) 학회에서는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가 화두였다. PR 분과의 Top Paper 중 1위와 3위가 CSR에 관한 이야기였다. Fleishman-Hillard의 부회장 Becky Vollmer씨는 월마트가 CSR 강조후 3%의 이윤 성장을 보였으며 GE가 1억불의 수익 성장을 보였다고 이야기 했다. (노트 필기해 놓은 내용이라 자세한 수치는 발표자에게 다시 한번 확인이 필요할 듯 싶다.) 또한 2009년에서 2010년까지 CSR 보고서를 작성하는 회사의 숫자가 700%가 늘어났으며, Green 랭킹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는 회사들이 여러가지 KPI 지표에서 다른 회사들보다 6.8%정도 더 좋은 성과들을 내었다고 이야기 했다.

예술과 CSR이라. 어째 어울리지 않는 단어같기는 하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서 청소년 보호위원회 위원 명단을 살펴보았더니 실질적으로 예술가들에게 경고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줄만한 사람들은 사실 찾아볼 수 없었다. 김여진씨와 이외수씨에게 기회를 주자. 이수만씨에게 기회를 주고, 양현석씨에게 기회를 주고, 박진영씨에게 기회를 주자.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 자격을 보니 네번째 항에 청소년시설ㆍ단체 및 각급 교육기관 등에서 청소년 관련 업무를 10년 이상 담당한 자라는 항목이 있었다. 연예인들, 예술인들 역시 청소년 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그들을 이 항목에 끼워맞추기가 힘들다면, 항목을 바꾸면 되지 않는가? 자문위원으로 그들이 들어가 있다면, 예를 들어, 가왕 조용필씨가 청소년 보호 위원회에 들어가서 청소년 유해 판정 기준 선정에 참여하고 선정 기준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청소년 보호에 대한 의지를 전달한다면, 그것이 바로 CSR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음악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십센치의 팬이지만, 그들의 가사가 내 자식에게 유해하다고 판단이 된다면, 유해판정 없이도 그들의 음악을 내 자식으로부터 멀리하도록 할 수 있다. Lazy Song은 미국에서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지 않았지만 다시는 우리 집에서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도 Bruno Mars의 음악 자체를 내 아들 근처에서 가능한한 최대한 오랫동안 멀리 떨어뜨려 놓을 것이다. 그들이 청소년을 생각하고 좋은 가사를 쓴다면, 나는 더욱 더 충성스러운 그들의 팬이 될 것이다. 결국, 여성가족부의 이번 결정은 학부모,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아하니 청소년들을 오히려 유해물에 접근하게끔 유혹하는 꼴이 되고 있는 듯 싶다. 결국 해결자는 학자들이 아니고 정치인들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고 방송을 만드는 이들이다. 이 문제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문제이지만 기업들도 이제는 CSR에 대한 필요성을 점점 더 느껴가고 있다. 그들에게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지 않을까?

 

About 우 창완

미국 위스컨신주립대학 스티븐스포인트 캠퍼스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PR 개론과 소셜 미디어PR, 스포츠 PR 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자세한 프로필은 http://bit.ly/kWSPvY 혹은 http://linkd.in/imRGHB 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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