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한국에서는 보통 날이겠지만 미국에서는 일년 중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이 다가왔다. 이번 주 목요일이 바로 추수 감사절 (Thanksgiving Day)이다. 학교는 오늘 저녁 (현재시각 수요일 아침 8시, 미국 중부시간)부터 공식적으로 문을 닫지만 오늘 낮에 있는 수업을 취소시켰다. 작년 이맘때쯤에 수업을 취소하지 않아서 겪은 고통 (수없는 이메일, 항의, 논쟁 등등…)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함이었다. 어찌보면 아직 3년밖에 되지 않은 교수가 꼼수 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아직 3년차 교수라 지난 여름 강의법 세미나에서 배웠던 내용들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요즘 강의법에 소개되는 많은 것들이 학생들로하여금 자신이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생각하게 하고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꾸준히 정리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이해에 따른 맞춤형 강의는 물론 그들에게 항상 명확한 학습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마치 소통의 중요성이 이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듯 그러한 것이 수업 시간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강의법이 굉장히 새로웠던 것은 내가 한국에서 공부했을 때 절대로 내가 무엇을 배우는 지, 그리고 왜 배우는 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던 까닭일 수도 있다. 요즘 한국 학생들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로 교수님이 내 주시는 과제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무언가 도움이 되겠지… 그것이 내 생각이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다르다. 그들은 서슴치 않고 이 과제는 왜 해야하는 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한다. 한국의 학생들도 그렇게 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그러한 강의법을 수업에 적용하려다 보니 이번 학기가 굉장히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벌써 다섯학기째 가르치고 있는 PR 개론 과목 역시도 많은 부분 수정을 했고 학생들에게 배운 것을 복기시키는 학습 활동을 시키는 만큼 내가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이번 학기 블로그 글을 쓸 기회가 없었다고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이다. 바쁜 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가다 보니 어느덧 추수 감사절을 맞이했고 학기의 마지막 자락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 수업을 취소 시키고 모처럼만에 아침댓바람부터 학술지를 잡아들었다. Journal of Public Relations Research라는 학술지로 PR에서는 가장 좋은 학술지로 꼽히고 있다. 교수가 학술지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면 돌에 맞을 일이지만 사실 학기 중에 학술지 읽을 시간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학기에 절실히 깨달았다.
어쨌든 변명은 그만하고, 가장 처음 읽기 시작한 논문이 휴스턴 대학 (University of Houston)의 Lan Ni 박사와 Villanova 대학의 Qi Wang 박사가 쓴 Anxiety and Uncertainty Management in an Intercultural Setting: The Impact on Organization – Public Relationships 라는 논문이었다. 한국말로 하자면, 국제 관계에서의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단체-공중 관계 (OPR)에 주는 영향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사실 별 생각없이 내가 요즘 너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려고 하고 있는 OPR에 대한 연구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상 어떤 논문이 그렇듯이 이 논문도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특히 내가 생각하게끔 했던 부분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 한 낯선상황에서 (이 논문에서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한 단체와 공중간의 관계에 대한 요소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공중관계의 요소라 함은 미국의 대표적인 PR 학자인 매릴랜드 대학의 James Grunig 박사와 플로리다 대학의 Linda Hon 박사가 제시한
1) 신뢰 (trust),
2) 상호관계에 대한 조정성 (상호관계에 대한 공통된 목표를 나누는 정도, control mutuality)
3) 관계의 만족도 (relational satisfaction)
4) 관계의 헌신도 (relational commitment)이다.
그리고 이 저자들은 여섯가지 전략으로 이러한 공중관계의 요소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여섯가지 전략은
1) 접근성 (Access)
2) 긍정성 (positivity, 관계를 즐겁게 하는 정도)
3) 개방성 (openness)
4) 당위성 (assurance of legitimacy)
5) 연계성 (networking)
6) 공유성 (sharing of tasks) 이다.
쉽게 말해 어떤 이가 국제 관계와 같은 낯선 상황에 빠지게 되면 1)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2) 새로 관계를 맺게 된 단체와 즐거운 관계를 만들고 3) 그 단체가 개방 되어 있고 솔직하다고 느끼고 4) 그 관계가 적합하게 이루어 진다고 느끼고 5) 네트워크 안에 들어간다고 느끼고 6) 일을 공유한다고 느낄 때 그 단체에 대해 1) 신뢰를 하게 되고 2) 공통된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고 느끼고 결국에는 3) 그 관계에 만족을 하고 4) 헌신을 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이다.
FTA에 관한 문제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역시 바빴다는 핑계가 있지만 FT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을 때 사실 관심을 많이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에는 국회에서의 충돌이 있고 나서 이 이야기를 접했다. 그래서 신문 기사를 마구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상 한국 신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갈증같은 것을 또 다시 느꼈다. 사실은 없고 의견만 너무 많다. 이번 FTA 협상의 화두는 “날치기”이다. 그리고 이제 한국은 큰 위기에 빠질 것이다.
FTA는 정말 경제에 박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우리 모두에게 낯선 상황일 수 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고 사실보다는 의견에 입각한 신문을 읽는 신문의 독자들로서는 불안감 (anxiety)과 불확실성 (uncertainty)을 느낄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보다는 의견을 보도하는 언론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아고라 사용자들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휘둘리는 국민들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다시 내가 읽던 논문으로 돌아가서, 저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Effective communication occurs when a receiver interprets a message in a way that is similar to the message transmitted by the sender.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정보를 받는 사람이 보낸 사람의 가지고 있는 의도와 비슷한 방향으로 해석하게 될 때 일어난다.
결국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정보를 보낼 때 정보를 받는 사람이 그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교수 3년차인 나로서는 아직도 학생들이 “교수님, 저 이 과제 뭐해야 하는지를 이해 못하겠어요.” 라고 이야기 하면 화가 난다. 경력이 나보다 많으신 선배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 사람이고 한국 사람이고 나에게 주는 조언은 항상 같다. “참아라. 그리고 다시 이해시켜라. “이다. 그네들이 강조하는 것은 교수들이 교수가 된 것은 공부를 나름대로 꾸준히 열심히 했기 때문이지만 학부 학생들은 모두 교수가 될 사람들도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학습 방법 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요즘 조금 더 명확하게 과제를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질문이 들어올 때는 참을성을 가지고 설명을 해 주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이 있다. 이메일도 열어놓고 트위터도 열어놓고 과목 홈페이지에 무기명으로 의견 수렴도 하고 또, 그에 따라 무언가 바꾸면 이렇게 바꾸었고 왜 바꾸었는가에 대해 꼭 이야기를 해 준다. 과제 설명을 할 때에도 관련 자료 링크도 걸어주고 과제 제출해야 하는 장소에도 링크를 걸어준다. 아무리 군사부일체라 하고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말으라는 이갸기가 있다지만, 뭐, 물론, 이마저도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지만, 선생도 변해야 사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정부의 현황에 대해, 그것도 국제 관계에서의 정책에 대해, 불신하고 불안해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국민들은 정부의 이야기보다 언론의 이야기를 듣고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더 열심히 듣고 따른다. 아니 내가 들은 정부에 대한 이야기는 정부가 국회를 조종하고 있고 국회는 난장판이다라는 이야기뿐이다. 이는 언론의 잘못인가? 사상가들의 잘못인가? 국민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수많은 소통 창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은 정부의 잘못인가?
물론 이에 대한 현황은 의사소통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문제, 국제 관계에 대한 문제 등 많은 요소들이 조합되어 있을 줄로 안다. 내가 하고 있는 학생들과의 작은 소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나에게는 의사소통이 항상 가장 큰 문제이고 가장 큰 관심 거리이다.
추수 감사절을 맞아 아침 댓바람부터 흥미로운 연구과제를 얻어 참으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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